[ 송진희의 주간프리즘 #13 ] 각국의 생존을 건 미래전쟁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8-12 22: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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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전쟁은 총성 없는 동아시아 미래전쟁의 서막
▲ 송진희 국회출입기자 (기업경제신문 정치사회부)
체코 프라하 카를교 인근에 있는 '존 레논 벽'(이하 레논벽)은 1980년대 체코의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의  젊은이들이 비틀즈의 반전운동과 평화에 관한 노랫말과 반정부 구호를 적으며 생겨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오늘날 프라하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된 '레논 벽'이 홍콩 도심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홍콩의 '레논 벽'은 지난 2014년 홍콩 행정장관의 직선제를 요구하며 70여일간 벌였던 '우산혁명' 당시 처음으로 선보여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최근 소위 송환법 반대로 시작되었던 홍콩의 시위가 일국양제 체제 붕괴에 대한 우려와 중국 정부에 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홍콩 시위의 확산이 가속되고 레논 벽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홍콩의 시위는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이후 쉼없이 이어져 왔으나 이목을 받지 못했다. 1850년 홍콩의 입법회가 처음 설치되었으나 1991년 까지 간접선거로 의원을 선출했고, 친영 단체 위주로 구성된 입법회는 홍콩 정부의 입법안을 통과시키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4년 홍콩 반환협정 이후 영국은 홍콩에 민주주의를 허락하여 분쟁의 불씨를 남겨놓았다. 홍콩 반환을 6년 앞둔 1991년 영국은 '반환 후 50년간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는 단서 조항을 악용하여 60석의 입법회 중 18석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개혁을 단행했고, 홍콩 시민은 넓어진 민주주의에 환호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중국은 홍콩의 입법회를 해산하고 2년 임기의 임시 입법원을 설치하였고, 이미 영국이 심어둔 직선제로 인해 홍콩 시민과  중국정부 간의 분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홍콩 시민은 2003년 국가 안전법  사태와 2012년 국민교육 교과서 파동, 그리고 2014년 우산혁명을 거치며 중국과 갈등해 왔다. 끊임 없는 분쟁 속에서 50년 동안 보장되었던 허울뿐인 일국양제를 깨닫고 일각에서는 이미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에 더해, 수 차례의 중국 당국에 의한 홍콩 내 반중 인사의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서 홍콩 시민 뿐 아니라 홍콩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기의식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만연해 있는 가운데 지난해 2월 17일에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한 송환법 개정안이 시위의 발화점이 되었고, 팽배한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 시위는 일파만파로 번지게 되었다. 대만 당국은 범인의 신병을 인도 받아 타이베이에서 살인죄로 기소하기를 원했지만 그를 범행 지역인 대만으로 송환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홍콩이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례를 맺지 않아 홍콩 경찰당국은 그를 합법적인 범죄인 인도방식으로 대만으로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콩당국의 법개정은 홍콩사법체계의 허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법규 개혁의 일환이었지만 홍콩시민들은 이러한 법개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범죄인 송환법규가 개정되면 홍콩인이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중국본토로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홍콩인들은 이 법규를 ‘중국송환조례’라고 칭했고, 이러한 이유로 홍콩의 민주파 인사와 시민들은 이 법안의 통과를 필사적으로 반대해왔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물론 홍콩의 반중국 혹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잡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중국본토 법률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의 땅으로 불리는 홍콩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6월9일부터 이 법규의 개정을 반대하는 홍콩시민 100여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과 대치하였다. 경찰은 과거 ‘우산혁명’ 당시의 유연한 대응과 달리 즉각 강경대응으로 맞섰으며 최루탄 고무탄을 이용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충돌이 격화 되자 경찰과 시위대 양측의 부상자가 속출하며 홍콩의 거리는 초토화 되었다. 지난 7월 21일 검은 옷을 입은 반송환법 시위대를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무차별 폭행을 하는 이른바 백색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각목부터 작대기, 야구 방망이, 골프채 등을 무기 삼아 마구잡이로 휘둘러 시위대 뿐 아니라 임산부까지 다치는 등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피해자의 대부분이 시위대 참여자인 것으로 미루어 친중파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친중파와의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할 뿐 아니라 늑장 대응과 무력진압을 강행하는 공권력과 싸워야 하는 홍콩시민의 분노와 절망을 민주화를 겪은 우리 국민은 십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홍콩 시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과 함께 영국과 미국의 이권이 얽히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함으로써 무역 전쟁이 환율 전쟁으로 번졌다. 3일 뒤 중국 인민은행은 환율을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른바 포치(破七·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는 현상)를 용인한 것이다. 중국은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 했지만,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범위와 강도의 문제일 뿐, 미·중의 통상분쟁이 무역전쟁으로,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무역전쟁이 멀리서 함포를 쏴대는 수준이라면 환율전쟁은 직접 맞붙는 전면전이다. 인명살상만 없지 나라 경제와 개인의 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어쩌면 더 큰 공포를 주는 싸움이다.

미국이 단지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이 관세폭탄을 상쇄하기 위해 위안화를 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전 세계 원자재·곡물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공장인 중국을 환율을 이용한 물가상승 등의 기제로 위안화 경제의 목을 죄려는 것이다. 미국은 군사력과 달러의 힘으로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현실적인 힘과 지위를 갖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만하다. 때문에 미국의 공격이 성공하면 중국이 받을 안보정책상의 치명적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중국은 이번 세기 중반에 결국 미국을 앞설 것으로 보고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전략으로 버틴다. 환율전쟁은 미래를 놓고 국가 생존전략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G2의 미래전쟁이다.

수출규제 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쟁도 일본이 미래전쟁의 서막이다.  최근 한국이 1945년 이후 경제·안보의 수직적 관계에서 일본에 맞서려는 위치까지 접근했다. 일본이 이를 용인할 리 없다. 일본 우익세력은 상당히 준비된 전략을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한국 미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첨단 소재·부품에 대한 일격, 안보 측면에서 한국을 좀 더 북한과 중국 쪽으로 밀어내고 상대적으로 미·일 안보동맹 공고화로 편 가르기, 한편으론 남북 간 끊임없는 이간질을 통한 남한 고립화 시도 등, 한국 미래의 약한 고리에 치명타를 던져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에 적극 제안한 것으로 미국·호주·일본·인도를 이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계획에 한국은 빠져 있다. 일본의 동아시아 플랜에 미국도 합세하여 태평양군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확대 개편했다. 한·일 경제전쟁은 총성 없는 동아시아 미래전쟁의 서막이며, 일본 구상의 하부 단위 전투일 수 있다. 일본은 이를 미·중 미래전쟁 속 하위 개념의 국지전으로 몰고 가 완벽한 편 가르기를 도모해 한일전에서 우위를 점령하려는 계획으로 보인다.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중국, 한국-일본의 충돌은 미래 패권을 놓고 군사적 대치, 무역·환율전쟁으로 출구 없는 장기전을 예고한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한국은 그 하부 단위 전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일과 애국심으로 무장했지만, 그 이상의 전략과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국정운영 세력은 주변 국가의 정책에 반응만 하는 수준이다. 야당은 아직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뿐더러 아예 과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대통령과 여야가 국내용 정치만 할 줄 안다. 주변국은 국가 생존을 위한 미래전쟁에 사활을 거는데, 과거전쟁만 하는 국내용 정치로 생존할 수 없다. 미래 전쟁에 필요한 지혜롭고 냉철하며 성숙한 대응이 필요하다. 취약한 외교력 강화 또한 절실하다. 외교 라인의 핵심인 4강 대사는 더이상 들러리가 아니라 각국 정치권을 꿰뚫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 외교채널 복원, 통상 역량 제고로 난국 수습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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