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커피이야기 #4] 카페를 그린 화가들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6-01 12: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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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예술, 철학을 꽃피우는 데 일조한 프랑스의 카페. 프랑스에 커피나무가 최초로 들어오게 된 것은 18세기 초다. 루이 14세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시장으로부터 선물받은 커피나무 묘목을 파리식물원에 심게 된다.이 묘목은 귀한 대접을 받으며 은밀히 식물원에서 성장하게 된다. 훗날 그 묘목은 카리브해를 거쳐 남미로 전파되고 오늘날 커피 생산국들을 탄생시킨 시발점이 된다. 당시엔 이 작은 시작이 거대한 커피산업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인 마르티니크(Martinique)섬에 근무하던 젊은 해군장교 가브리엘은 커피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다. 그가 커피나무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것은 커피산업이 유망하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휴가차 파리에 와서 커피나무 묘목을 구할 방법을 찾아 사교계에 입문하고 미남계를 이용해 묘목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곧 파리를 떠나 심한 역경을 견디어 내면서 결국 마르티니크 섬에 안착한다. 항해 중에 마실 물이 없는 상황에서도 물을 아껴 커피나무를 가꾸면서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섬에 도착해서 그는 나무를 심고 행여 다칠세라 주변에 보호막을 쳐 엄중한 관리를 한다. 그 덕분에 커피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드디어 결실을 얻게 되고, 그 씨앗은 계속해서 커피나무를 번성하게 한다. 가브리엘은 주변 지인들에게 씨앗을 나누어 주고 커피나무에 관심을 갖게 한다. 이처럼 어렵게 시작된 커피는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가이아나(Guiana)로 전파된다. 가이아나에서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퍼지게 되고, 브라질에서 번성한 커피는 하와이로 전파된다.

 

프랑스의 커피 문화는 1686년 프로코피오가 파리에서 최초로 커피하우스 ‘카페 드 프로코프(Cafe de Procope)’를 오픈하면서 시작된다. 이 카페는 대형 거울, 고급스런 테이블과 의자,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만들어낸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다.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현재도 레스토랑 형태로 성업 중이다.

프로코프가 빠르게 자리를 잡고,유명해진 것은 우아하면서도 호화로운 느낌의 실내장식뿐만 아니라 당시 저명한 인사들과 문인들의 출입 덕분일 것이다. ‘카페 로열(Cafe royal)’을 좋아했다는 나폴레옹의 단골집이기도 했고, 몽테스키외, 발자크, 랭보, 루소, 볼테르 등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했다.

사교를 위한 만남과 소통의 장소였던 카페엔 혁명가와 철학자들 뿐 아니라 화가들도 관심이 많았고, 카페의 풍경을 화폭에 옮기기도 하였다.

“오늘은 내가 묵고 있는 카페의 내부를 그려볼 생각이다. 불이 밝혀진 저녁의 모습을. 제목은 ‘밤의 카페’가 적당하겠지. 밤새 문을 열어두는 이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밤을 배회하는 사람들은 밤이슬을 피할 돈이 없을 때, 너무나 취해 다른 곳에서 문전박대를 받을 때 이곳에서 안식처를 찾는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에 머물 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술, 커피 등의 카페인 음료를 즐기며 예술 활동을 했는데 고흐 역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다니며 예술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고흐가 아를에 머물 때 함께 한 고갱은 카드게임이나 음악을 즐겼는데 고흐는 걷기, 독서, 쓰기 등 주로 정적인 성향의 소유자로 고갱과의 영혼의 동반자는 애초에 불가했었는지 모르겠다.

고흐의 작품 중 잘 알려져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는 1888년 9월 중순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서명이나 이니셜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주 이 그림에 대한 언급도 있었고,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양한 스케치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밤의 카페 테라스」는 고흐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아를에 가면 반 고흐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 카페를 볼 수 있는데 그림 속의 카페는 ‘반 고흐 카페’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800년대 후반 파리에는 몽마르뜨 전성기가 펼쳐진다.  에드가 드가는 ‘누벨 아텐느’라는 카페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작품 「압생트」가 있다. 작품에 나오는 두 남,녀의 표정이 압권인데, 판화가 마르슬랭 데부탱과 여배우 엘렌 앙드레라고 한다. 인물들의 표정이나 자세 등으로 읽히는 속설도 많은데 어쨌거나 둘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것이 그들에겐 커피보다 압생트에 매료된듯 하다. 압생트는 고흐, 피카소, 로트렉 등 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던 중독성 강한 초록빛의 맑은 술이다.
 

한편, 모네와 시슬리는 사교로 유명했던 ‘리슈’라는 카페를 동경하였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신들이 그린 유명 작품들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로트렉은 탕부랭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를 그렸고, 폴 고갱은 아를의 밤의 카페를 그렸다. 

커피가 있는 장소는 화가들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의 담소가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으며 당시 공식적인 살롱 입선 작품에 대해서 정부가 화가의 판권 보장 및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데, 전통적 심사가 우선이 된 보수적 운영에 젊은 화가들의 거센 항의가 잇따랐고, 이어 화가들이 정부에 진정서를 냈다고 한다. 이에 1863년 정부는 낙선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낙선전’이라는 전시회를 열게 했다고 하는데, 이 낙선전의 대표적인 작품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이다.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의 열띤 토론과 정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카페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와도 같은 예술세계의 명소였다. 커피가 주는 맑은 정신과 압생트의 힘으로 그려낸 예술가들의 감각적 작품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기는 또 다른 예술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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