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주간프리즘 #9] '불공정한' 불평등의 계급사회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6-03 11: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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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은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현재 한국의 소득격차가 너무 크고, 공정성도 약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출세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사연이 지난해 전국의 성인 38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소득격차는 너무 크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은 85.4%에 달했다. 소득격차가 너무 크다는 인식을 0점(매우 반대)부터 4점(매우 동의)으로 측정했을 때의 점수는 3.22점이었다.

소득격차뿐만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 전반적으로 나빴다. ‘인생에서 성공하는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80.9%(‘매우 중요’ 31.7%, ‘대체로 중요’ 49.2%)로, 중요하지 않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한 비율(19.2%)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에 대한 동의 비율도 62.2%(매우 동의 14.3%, 약간 동의 47.9%)로 절반을 넘었다. 응답자들 중 ‘법의 집행’이 평등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이들은 12.5%에 불과했다. 사회 분야 중 사법·행정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보고서의 결과는 얼마 전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고 국내 개봉된 영화 기생충과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불평등과, 불공정의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가 보사연 보고서와 오버랩 되는 이유는 계급 사회에 대한 뻔한 비판보다, 계급이란게 마치 어떠한 물리법칙처럼 너무 확고하고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다는걸 표현한다는 점이다. 

 

'물리법칙'이란 우리가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깨달을수 있는 것들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물체를 밀면 움직이는 것처럼, 기택네 반지하집과 문광네 지하실이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있고 박사장네 부잣집이 오르막을 올라가야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물리적 거리와 문화적 괴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가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감독은 그렇게 물리 세계와 계급 사회를 상징적으로 비유하여 쉽고 또렷한 이미지를 남긴다.

'기생충'으로 상징된 기택네와 문광네는 상류층인 박사장네를 미워하거나 그들의 자리를 뺏으려는 생각 자체가 없어보인다. 기택네는 "부자들이 더 착해" 라고 말하고 문광의 남편은 덕분에 산다고 "RESPECT"을 외친다. 현실의 무게에 의한 하류층의 관성. 이 영화에서의 계급이란 절대로 뒤집힐리 없는, 그냥 당연한 물리법칙이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가족은 비를 맞으며 한참을 내려가고 내려가 집으로 향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계단에 서서 발 밑으로 빗물이 콸콸 흘러 내려가는 것을 알면서도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기우의 참담한 표정이 예고하듯, 집안은 침수되어 있다. 높은 곳의 박사장네 가족에겐 그저 캠핑이 취소되서 조금 짜증나게 만든 정도에 불과하던 비가, 낮은 곳의 기택네 가족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 된다. 변기의 물이 물리 법칙을 거스르며 역류한다. 오빠 기우의 친구가 부잣집 딸 다혜와의 결혼을 꿈꿀 때 이를 비웃으며, 남 걱정 말고 우리나 챙기자고 말하던, 순리를 거스르지 말고 그 안에서 최대한 도생하자던 여동생 기정은 이 역류를 막으며 허탈한 담배를 피운다.

비는 누군가에게는 낭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재난이 되는 삶의 구조를 보여주면서 돈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쉽게 해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박사장의 집에서 나와서 3명의 기택 가족이 하염없이 내려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을 점점 가라 앉게 만든다. 

의,식,주 중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무엇일까? 입는 옷과 신발과 가방으로 부자와 빈자를 드러낼 수 있지만 단박에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사내식당과 학교식당 같은 급식 시설을 이용하면 먹는 것으로도 부자와 빈자의 구분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사는 곳으로 부자와 빈자를 아주 쉽게 구분하는 게 한국 사회다. 실제로 그렇게 가난의 낙인이 찍힌 동네에 사는 분들이 평균 소득이 낮아 그런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을 무슨 전염병에 걸린 사람 취급하고 멀리하려고 하고 배척한다.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반지하에 산다. 몇 번의 자영업 실패로 반지하로 이사 왔지만 보이는 건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다리와 노상방뇨하는 인간들 뿐, 앞이 보이지도 않고 계획도 없다. 자녀가 있지만 장남 기우(최우식 분)은 4수를 한 백수이고 딸 기정(박소담 분)은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싶어하지만 학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전원 백수인 가족은 오늘도 주인집 와이파이 신호에 기생하면서 사는 위기 가정이다. 

관계에는 공생이 있고 기생이 있다. 공생은 A와 B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보충하는 관계이지만 기생은 갑과 을의 관계처럼 한쪽의 힘에 기대서 사는 관계다. 숙주와 기생충은 숙주에게 걸리지 않게 조금씩 양분을 얻어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너무 욕심을 내서 숙주의 건강을 위협하면 기생충 본인들도 함께 죽는다. 따라서 최대한 숙주에게 걸리지 않게 하려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뜯어내야 한다. 

기택 가족은 기생을 한다. 문제는 4명이 모두 한 가정에 기대다 보니 위험스러운 나날이 시작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엄마 충숙을 빼고 퇴근 후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에 크게 걸릴 일은 없다. 그러나 박사장의 8살 아들은 4명 모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절대로 숨길 수 없는 반지하에서 베인 곰팡이 냄새는 숨길 수 없는 가난의 낙인이 된 것이다. 이후 영화는 지하로부터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변화의 국면을 보인다. 

영화 <기생충>은 지상과 지하라는 이분법으로 한국의 고착화 되어가고 있는 돈으로 재단된 계급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지적했듯 한국의 반지하는 아주 독특한 공간이다. 요즘은 다가구 주택보다는 다세대 주택인 빌라가 더 보편화 되었지만 80, 90년대에는 주인집이 윗층에 살고 세입자들이 옥탑방이나 지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도 아닌 반지하라는 공간에 주거하는 집들이 많이 지어졌다. 

한국은 생기지 말았어야 할 주거 공간이 꽤 많다. 고시원도, 옥탑방도, 반지하도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나쁜 일자리를 없애서 평균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것처럼 '지옥고'로 불리는 불량 주거 환경은 차차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그 불량 주거 환경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여유로운 사람들은  '그런 곳에 안 살면 되잖아'라고 쉽게 말하겠지만 제한된 경제력으로 넓고 뽀송뽀송한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게 현실이다. 돈과 관련되면,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공간을 분할하는 것이다. 

한국은 제도화 된 신분 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돈으로 계급화 된 사회'다. 돈 많은 사람은 [갑], 종속 관계이거나 기생 관계인 사람은 [을]로 살아간다. 박사장은 갑이고 기택 가족은 을이다. 박사장이 대놓고 갑질은 하지 않고 매너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내인 연교의 장보기 도우미부터 갑으로 사는 인간들의 무례한, 그러나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하지도 못한  행동을 보인다.

반지하에서 지상 1층은 걸어서 1분도 안 걸린다. 계단 몇 개만 오르면 있는 그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수십 년 또는 평생 걸릴 수도 있는 현실을 영화는 묵묵히 담아내고 있다. 한국은 보이는 '계급이라는 선'은 없지만 '돈이라는 무언의 선'이 만드는 계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 또는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여러 장치를 이용해서 이러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그 여러 장치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돈이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서 쉽게 돈을 벌고, 그들만의 내부서클의 선을 넘지 못하게 많은 장치를 걸어 놓은 것이다. 

부자와 빈자의 선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같은 처지 또는 '을'끼리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없애려고 싸우는 모습을 연출한다. 을의 위치에서도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기 보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데 대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선을 그어서 아래에 사는 사람과 섞이고 싶지 않고 기어오르는 것을 용납 못하는 박사장. 그런 박사장을 속이고 기생하는 기택 가족, 모든 것을 속이고 숨길 수 있었지만 '냄새'는 숨길 수 없다. 다른 것은 위조하고 숨겨도 특유의 몸에 벤 냄새는 정체를 드러낸다. 박사장은 아내에게 기택에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의식하지 않았던 아내 연교도 기택에서 나는 냄새를 의식하고서는 냄새 난다고 말하는 대신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봐 기택의 기분을 더욱 불쾌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살지만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통해서 사람 보다 돈이 중요시되고 돈이 만든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고 부자는 악당이라는 시선이 아닌, 부자도 빈자도 모두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살아갈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치 기생충이 숙주의 몸에 맞게 변화를 하듯, 각자의 삶의 풍경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국사회의 '계급과 불평등'을 생각하게 한다. 불평등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가 있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어 더 노력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높은 대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더 혁신적인 기업에 더 높은 이윤이 보장된다. 이처럼 노력과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공정하다는 것이 통용되는 윤리다. 물론 그 격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이런 공정한 불평등이 아닌 '불공정한 불평등'이다.

'불공정한 불평등'이 일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과 인사가 노력과 능력이 아니라 부당한 차별과 청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항공 재벌가의 졸렬한 경영행태가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주식시장과 기업경영을 관할하는 제반 제도는 재벌가 인사특혜를 견제하는 데 무력했고 부적격자들이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무도한 질서가 자리 잡았다. 최근 도입된 기금관리규율, 스튜어드십코드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여 대한항공 재벌인사를 경영참여에 배제한 것은 주목해야 할 변화다. 투명한 규율에 따라 부적격 경영을 견제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매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정·관계 고위인사와 사회지도층 자제의 취업과 인사 부정 역시 불공정한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기회의 불평등은 가계의 지위, 인종, 성, 지역과 같이 개인이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배경 때문에 발생하는 공정하지 않은 불평등이다. 양육, 교육, 건강 등 개인의 삶에 모든 선진국들이 개입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불평등 때문에 삶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즘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과 경제적 성취에 미치는 기회불평등을 상징한다. 이런 말이 유행할 만큼 기회불평등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여성이 겪는 기회불평등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임금 격차와 경제활동 참가율에 대한 최근 자료는 여성이 가장 차별받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불공정한 불평등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시장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경제적 의사결정이라는 투표로 시장가격과 분배를 결정한다. 차별이 없고 모두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이상적인 시장은 이런 경제적 투표권을 국민 모두에 균등히 부여한다. 우리 시장은 이런 이상에서 크게 벗어나 상당수 국민들의 경제적 투표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경제력에 따라 투표권을 부여한다. 이렇게 배제된 국민들에게는 반시장적 굴레가 씌워지고 불평등이 발생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투표권이 있는 이들을 위해 적용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및 다양한 차별과 배제가 우리 시장에 만연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 차별,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불공정 거래,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 그리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비대칭적인 협상력이 이런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인식이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사회에 아노미와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어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강조하고 있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이를 개선할 제도개혁이 뒤따라야 하지만 기득권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개혁안이 미비하면 비판받아 마땅하나, 방관적 태도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 비판을 환영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풍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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