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人사이트 #9] 세 이름으로 세상에 헌신한 씨돌아재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6-21 09:30:03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다. 이 세 이름은 모두 한 사람의 이름인데, 그의 이름 만큼이나 그의 생도 다이나믹했다.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과 자신를 돌이켜 보게 만들었던 것은 독재정권과 민주화 움직임 속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가족을 돌보며 진실을 밝히려 했던 청년, 삼풍백화점 참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애썼던 씨돌 아저씨의 삶, 그 자체였다. 요즘과 같이 계산적이고 실속을 따지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희생과 봉사를 택했던 삶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살았던 원조 자연인으로서의 스토리는 적잖은 감동을 선사했다. 


1953년생인 그는 세례명인 요한으로 살다가 자신이 지은 이름 씨돌로 살았고 다시 본명인 용현으로 살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모습은 2012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에서 보여진 ‘자연인 김씨돌’의 삶이었다. 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에서 사는 씨돌은 텃밭에서 지렁이와 얘기하고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벌거벗은 배에 모이를 올려놓고 참새를 부르는 ‘괴짜’였다. 사연을 소개했던 임성훈씨와 박소현씨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씨돌 아저씨'는 기억에 남아있다고 회고한다.

김용현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 고비마다 나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거리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고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 모임 ‘한울삶’과 함께 투쟁하던 모습이다. 1987년 12월 군대에서 정연관 상병이란 한 젊은이가 숨지자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해 정치적 이유로 구타당해 숨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그였다. 그의 오랜 노력은 2004년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정 상병은 당시 대선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대표를 지지했다가 구타당해 숨졌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그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와 구조를 돕기도 했지만, 사건이 해결되면 늘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프로그램을 담당한 연출은 그를 처음 취재하면서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살아가는 그의 인생이 놀라워 방송이 나간 뒤에도 가끔 찾았다며, 씨돌 아저씨와 대화를 하면 자신도 숨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분의 인생을 한번 제대로 조명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3년 전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알게 된 그의 삶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애초 1부로 기획한 것을 2부로 늘렸는데도 미처 방송에 담지 못한 것도 많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요한은 제주에서 ‘사랑과 믿음의 집’을 꾸려 고아·부랑아들을 돌봤고, 1990년대 말에는 영월 동강댐 반대 운동에 앞장섰으며, 2013년엔 삼척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그의 흔적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방송 출연료를 비롯해 자신이 가진 돈도 전부 기부했고, 정선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수확물을 아낌없이 보냈다. 

가까스로 찾아낸 그는 오른쪽 몸이 마비돼 요양병원에 누워 있었고, 언어장애까지 앓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유독 그의 삶에 가슴 먹먹해 하는 이유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당시 고문, 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몸 곳곳이 아팠다. 그 영향 탓인지 봉화치 마을에서 일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혼자 살다보니 뒤늦게 등산객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보호자가 없어 수술도 빨리 받지 못했고, 이후 요양원을 전전하는 과정에서도 사기를 당하는 등 야속한 상황이 이어졌다.

의료진은 "뇌 중심주의 시상 핵이라는 부분에 뇌출혈이 크게 발생했다. 안타깝지만 뇌는 더 이상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측 반신마비는 평생 갖고 살아야 하고 언어장애로 소통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말미 피디는 시청자의 마음를 대신해 질문을 던진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살았냐”고. “어쩌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냐”고. 용현은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답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용현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돈이 없어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방영된 이후 시청자들의 후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조차 없기에,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2부 방송이 끝난 다음날 후원 계좌가 만들어졌다.(신한은행 100 033 687880 김씨돌 후원회, 문의 리토피아 출판사 032-883-5356)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용현씨의 재활과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청원을 올린 이는 '이 땅에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우기위해 묵묵히 헌신한 이들을 대표하여 김용현씨를 치료 및 재활을 청원합니다. 저는 김용현씨와 면식도 없지만 그러한 용기도 없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항상 미안함과 죄송스러움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답변에 너무 작아지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라면서 "수많은 용현씨를 대표해 김용현씨의 치료와 재활을 국가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며 글을 맺었다. 


20일 현재 용현씨의 재활 치료에는 1,700여명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 지정에는 32,000여명이 참여중이다. 

그는 몸이 불편한 상태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지만 그의 사연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가르침을 주었으며, 어딘가에서 조용히 보석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제2, 제3의 용현씨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저작권자ⓒ 기업경제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