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주간프리즘 #18] 동물국회, 식물국회에서 마비국회로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12-03 01: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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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희 국회출입기자 (기업경제신문 정치사회부)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의 단식으로 한-아세안 회담을 향한 국민의 시선을 돌려놓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기습 선언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과 민생법안, 예산안 등의 일괄 처리를 방해하면서 국회는 말 그대로 마비상태로 접어들었다.

지난 4월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 등을 비롯한  여러 개혁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동료 의원을 감금하는 등 상식에서 벗어난 '동물국회'가 통하지 않자 장외투쟁의 떼쓰기식 '식물국회'로 국회의 시계를 정지시키더니, 이제는 필리버스터로 '마비국회'로 전락시키고 있다.

한국당이 199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철회를 요구하며 본회의에 불참해 오는 10일인 정기국회 회기 말까지 국회 파행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법은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의 서명으로 필리버스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을 곧 ‘협상 결렬’이라고 판단, 한국당 없이 패스트트랙 법안을 관철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어제 “공존의 정치, 협상의 정치가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이 보장하는 제도이지만 한국당이 선거법도 아닌 199개 안건 모두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 정당사에서 본회의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건 정당은 없었다. 1970년대 3선 개헌안이나 의원 체포동의안, 2016년 테러방지법에 무제한 토론이 벌어졌지만 정치적 쟁점 법안에 한정했다.

여야는 조속히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유치원 3법’을 비롯해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 데이터 관련 산업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3일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는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나머지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협상안을 내야 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민생을 외면한 채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정치투쟁에만 골몰한다면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행동이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기준이 되는 등 제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여당과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한국당을 고립시키려 들지만 말고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여러 유인책을 고민하면서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는 한편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 함께하는 ‘4+1’ 패스트트랙 공조를 병행해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내리막 경제를 되살리고 민생을 북돋을 조치를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제1야당은 사회와 산업의 미래를 바꿀 법안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당은 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정치를 포기하고 국민을 공격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전략을 인질극에 빗대 ‘법질극’이라 했다. 민생법안을 볼모로 정치적 협상을 하려는 모습에 타당한 발언이다. 야당의 이런 극한투쟁 방식은정치가 왜 개혁되어야 하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가 소비자인 국민을 위해 기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기득권과 소수 정치인을 위한 전유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며, 유사 이래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사대가 판치는 나라에서 기회주의자들이 늘 지도층을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자율적이지 못하고 자국보다 강한 국가, 세력에 복종하거나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이들의 천박함에서 사대주의(事大主義)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어떻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가능하며 민족의 절대 염원인 통일과 우리의 미래인 저 넓은 유라시아 시대를 꿈꿀 수 있을 것인가?

"인류의 가장 비극은 지난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지적을 가슴 깊이 새겨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정치다. 우리 사회의 정치체제는 일반적으로 소수의 지도층이 다수의 국민을 이끌어 간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부강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항상 갈등과 분쟁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다.

지소미아 연장과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한 단식으로 정치와 법질서를 무너뜨리고 희화화하는 것도 모자라 극우 기독교 집단과 연일 쇼로 일관하는 제1야당의 당대표, 북미대화 파행의 주범이자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정부의 평화정책을 방해한 것도 부족해 또다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에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총선이 열리는 내년 4월 이전엔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제1야당의 원내대표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할 수 있을까?

검찰은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국회의원과 출마예상자들에 대한 내사를 시작하는 등, 총선과 대선까지 좌지우지 하겠다는 몽상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 테러리스트 집단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혹자는 말한다. 작금의 여러 사태에서 보듯 검찰은 조직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마피아 집단이나 다름없어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보복한다. 대한민국 검찰은 국가의 법 질서를 유린하고 있다.

희대의 사기극이 될지도 모를 정경심 교수의 기소는 일단 재판부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재판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쉽게 말해 재판할 사항이 못 된다는 것. 한마디로 코미디다. 온 나라가 지난 3개월 넘게 난리를 거듭했지만 법원의 공판 절차에서 사모펀드와 관련, 조국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의 횡령 혐의 등에 대해 재판부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기소한 뒤의 수사 내용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할 필요도 없는 것을 가지고 온 나라를 이 잡듯 헤집고 국민을 겁박하며 한 가족을 철저하게 궤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가적 폭력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대통령의 "윤석열을 신뢰한다"는 말은 재고되어야 옳다. 대통령의 말은 그대로 정치행위다. 이 말이 주는 함의가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에 어떤 사인을 주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검찰은 대통령의 깊은 뜻을 알려고 들지 않는다. 다만 이용할 뿐이다. 그것이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국회의원들 강제 소환 어렵다"이고, 나경원과 최교일 등에 대한 수사를 수개월째 착수하지 않는 것이며, 황교안이나 조현천 등 국가 내란 음모 가담자에 대한 검찰의 의도적 직무 방기다.

예전에는 누구나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고, 그런 희망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종종 현실이 되어 개천에서 용들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 즉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그만큼 기득권에 편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 구조다. 그래서 사법부나 검찰, 정부 고위 공직자, 언론 등 머리 좋고 영악한 자들이 기득권에 들어가고자 기를 쓰고 불,탈법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한번 기득권이면 영원히 기득권이 되는 구조에서 자행되는 세태다. 역으로 가난 또한 그렇게 대물림된다.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는 이런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들이 악행을 자행해 국민들을 수탈해 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면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인류의 악순환 구조다. 그러면 이런 기본적인 인식과 역사를 토대로 한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5년 단임의 한시적인 정부가 이런 사고를 가지지 못한다면 정부의 기능은 크게 의미 없다. 정부가 이런 것을 알고 그 기본적인 철학을 토대로 국가 법질서를 강력하게 세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가치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은 오랜 기득권의 악행을 허물고 반듯한 나라를 세우라는 국민적 명령을 기반으로 한다. 혁명정부를 요구한 국민들의 지엄한 명령이다. 그것이 엄동설한에 타오른 촛불이다. 목숨을 건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선조들과 선배들에게서 그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서두에서 인용한 토인비의 지적처럼 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온 몸을 던져도 역사는 너무나 서서히 변한다. 기득권의 강고한 카르텔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정부나 민주당처럼 하는듯 마는듯 하면 어떤 역사가 우리를 기다릴까? 과연 개혁은 있을까? 살벌한 국제 정세에서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항구적으로 악순환의 멍에를 벗지 못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초일류 국가라는 희망을 보았다면, 국내 정치의 혼란과 기득권의 득세, 남북 경색에서 무엇을 개혁하고, 무엇을 이끌어 내야할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단호히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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