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기철 교수 "해남의병 정신은 무엇인가"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7-23 01: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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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부터 한말의병항쟁을 중심으로
▲ 해남의병사 관련 학술발표중인 호남의병연구소 범기철교수
전라남도 해남군과 남도의병 역사공원 해남군 유치협의회는 지난 18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범기철 교수를 초청, ‘해남의병사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해남 의병사 학술발표회에는 명현관 해남군수와 오길록 남도의병 역사공원 해남군 유치협의회 회장,  윤영일 국회의원, 이순이 해남군의회의장, 범기철 호남의병연구소장, 남도의병 역사공원 유치협의회 회원 및 해남군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호남의병연구소장이기도 한 범기철 교수는 '해남의병 정신은 무엇인가 -임진왜란부터 한말의병항쟁’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범 교수는 “의병의 그 고귀한 뜻은 민족정기선양 및 한민족 정통성 회복으로 결국은 민족통일로 이어지는 의병정신으로 승화 되어야 한다”며 “당위성을 갖고 백제로부터 시작된 구국운동과 한말 나라를 찾고자 했던 ‘해남항일의병사’를 통해서 ‘해남의병’들의 구국과 독립운동의 행적을 다시 선양하고자 한다고 학술회의 의의를 밝혔다.

의병은 국가 정규의 군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정의의 군병(軍兵)으로서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하게 될 때에는 구국항쟁으로 일어났던 것이며, 나라가 망한 뒤에는 복국운동(復國運動)을 위해 궐기했다. 탐관오리의 배척, 나라의 멸망,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고 나라를 되찾는다는 대의명분으로 시작된 의병들은 구국항쟁, 복국운동을 거쳐 독립운동 및 광복운동을 펼치며 이어졌다.

범기철 교수는 "해남의병정신은 사람을 기다린 후에야 충절이 더욱 빛난다. 충의의 선비는 시대를 기다린 후에 그 행적이 더욱 드러나고 항쟁적 충절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것”이라면서 “1592년 임진왜란부터 1945년 8.15해방을 맞기까지 근 450여년이 지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500여년의 시간이 흘러 ‘해남의병항쟁사’를 보면서 ‘해남의병정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범 교수는 강연에서 "임진왜란 당시 해남의 의녀 어란은 칸 마사가게(菅正陰)로부터 왜군의 총공격 날짜를 알고 이순신 장군에게 통보, 명량해전에 전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일본군 3만 대군이 병치재를 넘어온 성산들 전투에서는 장흥·강진·영암의병 4천 명, 해남지역 2천여 명, 윤륜·윤신 형제부대 6천여 명, 해남 대흥사 방면 김인수 부대 1,500여 명 합류하여 해남 옥천 성산대교들에 집결하여 어란진에 상륙한 일본군과의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북상 중이던 일본이 합세하여 전세는 다시 불리해져 성산대교들 의병과 일본군은 3일간 전투가 벌어져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은 거의 없었으며 일본군도 큰 타격을 입었다. 옥천평야는 해남 수성(守城)의 보루지요 명량대첩의 전초지로,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될 유적이며 이날 만의총 의병은 위국진충의 고귀한 희생이요 혁혁한 수훈으로 우리 청사에 영원히 빛날 영혼의 무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심적암 의병운동은 일제가 호남지역 침략의 요충지인 전남 서남부 해안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많은 일본상인, 농업경영자, 어업종사자 들어오자 지역주민들의 항일의식이 고조되어 일어났다"며, 이 운동으로 "해남지역 사회에 민족의식이 앙양되었고 1919년 3.1운동과 1935 전남운동협회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범 교수는 또 “정유재란 관련 해남 설화 ‘병치재 의병전투와 위씨부인전’을 보면 해남의 선조들은 충을 위해 농기구를 들고 왜군과 싸우기 위해 병치재로 나갔다”며 “임란의병의 투쟁목표는 근왕(勤王)과 향토방위였고 한말의병은 민족과 국토방위였고 일제강제점거시대에는 독립 운동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임란의병이나 한말의병은 향토방위와 민족정기를 위해 일본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무기체계로 항일독립전쟁의 선봉에서 투쟁한 민족의 국수(國粹)”라며 “일제침략에 대응하여 일어난 항일운동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저항은 의병전쟁이었고, 임진왜란 한말 항일의병전쟁 역시 무기의 열세로 인해 우주보다 귀하고 무겁다는 생명을 바치고 살신성인(殺身成仁) 사생취의(捨生取義)라는 의병정신을 이 땅에 남겼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남운동 협의회는 1932년 10월 15일경부터 1933년 1월 9일까지 김홍배.오문현 등이 해남 농민운동의 지도기관 조직에 관한 문제와 프로칼 운동 및 야학회 설치 등에 의해 무산농민들에게 공산주의 의식을 교양 강화하고 소작쟁의를 촉진하는 등’에 관하여 여러 차례 협의하였다. 전남운동 협의회는 해남지역 노농회, 노동조합, 노동연맹 등 노동단체 설립(1924-1925)하고, 삼산노동회(1924) 및 북평노동조합(1925), 노동야학부 설립하고 교육했다. 이들의 운동은 일제의 착취 구조아래 노동자들의 단결과 저항을 보여줌으로써 1930년대 농민운동, 항일사회주의 운동 전형적 모범으로 평가 되고 있으며, 2017년 1930년대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관심과 명예회복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남도의병 역사공원 해남군 유치 협의회는 윤영일 국회의원 외 7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남도의병 역사공원 해남군 유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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